그 어디를 둘러봐도 초록이 한가득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숙소 창밖으로 초록, 문을 열고 나서니 길가도 초록, 하늘도 초록, 바다도 초록, 심지어 식당과 카페에서 바라보는 풍경마저 모두 초록이다. 초록 풀밭에 아무렇게 떨어진 야자열매가 초록 싹을 틔웠다. 모든 나무에 열매가 매달려 있다. 이곳의 온도와 습도가 모든 생명을 틔워내는 것 같다. 천국을 보지 못했지만 마치 이런 곳일 것 같다.
오후가 되자 바닷길이 열렸다. 사람들은 쉽게 걸어서 섬에서 섬을 건넌다. 수영복을 입은 나도 한 손에 샌들을 들고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잔잔한 물살을 헤치며 걸었다. 적당히 데워진 바닷물이 종아리를, 허벅지를 간질였다. 가만히 멈춰 서니 투명한 물아래 물고기 몇 마리가 보였다. 저 멀리 스노클링을 하는 사람들은 꽤 재미날 터였다. 도착한 꼬마(마섬)에서 괜히 예쁜 산호 몇 개를 줍다가 다시 걸어서 되돌아왔다.
천국 같은 이곳에서 까맣고 긴 생머리의 어린 미얀마 소녀를 만났다. 숙소에서 일하는 그녀는 내가 “싸와디(สวัสดีค่ะ 안녕하세요)“, ”Excuse me(실례합니다)“만 건네도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떨군다. 타이인인 친구의 친구 ‘위’는 그녀가 미얀마에서 왔다고 알려주었다. 이곳의 초록을 유지하기 위해 어젯밤 제 또래의 (아마도 유럽인이 분명한) 친구들이 즐긴 풀문파티의 흔적을 청소하고 있었다.
멀리 타향으로 일하러 온 소녀는 미얀마에서 쉽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섬처럼 생각하고 이곳 타이로 왔을 것이다. 열심히 일한 그녀는 이곳에서 야자열매처럼 쉽게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그녀는 걸어서 쉽게 섬을 오가듯 쉽게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온통 초록인 아름다운 이곳이 그녀에게도 천국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3 Thai Travel 4. Koh Phangan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