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짜이 태국 여행 9. 방콕: 친구의 친구 집에 놀러 간 이야기

걷다 보니 공원이다. 왕실 소속 사란롬 공원. 방콕에 몇 번을 왔지만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저녁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한창 뛰고 있다. 뛰지도 않았는데 지친 우리는 잠시 공원에 앉아 쉰다.

여행이 딱 하루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 친구의 친구 ‘위’의 커다랗고 예쁜 집에서 요가했다. 엊그제 시장에서 산 전통의상 바통을 챙겨 입고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어 남게 되었는데, 이럴 때는 영어를 못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다. 여행이 딱 하루 남았는데, 비로소 친구의 친구 집에 느긋하게 놀러 온 기분이었다. 아니, 마치 여행자가 아닌 이곳에 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평소 일과와 다른 것은 창밖의 풍경뿐이다. 한국은 아직 초록 잎이 나기 전 마른 가지일 텐데, 이곳의 바나나, 파파야, 애플망고 나무는 온통 초록 잎사귀를 앞다투어 펼쳐내고 있다.

어제 새벽에 큰 태풍이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바람에 놀라 혼자 소파에 앉아있었다. 내일 친구들이 한국에 가면 혼자 남아 여행을 계속하겠다고 결심하고 짐을 챙기던 중이었다. 취소할 비행깃삯과 남은 세면도구, 옷을 가늠해 보다 뒤늦게 매일 먹어야 할 약이 모자란다 것을 깨달았다. 아, 남을 수 없구나! 그 순간 엄청나게 강한 천둥 번개가 치더니 비가 쏟아졌다. 세찬 빗물에 모든 게 쓸려갈 것만 같다. 어쩌면 같은 세기의 바람인데 이곳 나뭇잎이 더 커서 더 크게 흔들리니 더 강한 바람처럼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태풍 때문인지 공원에 리라와디 꽃이 잔뜩 떨어져 있다. 향기로운 리라와디의 옛 이름은 ‘란톰’이라고 친구의 친구 ‘위’가 설명해 주었다. 란톰의 뜻은 슬픔이라고 한다. 통곡의 꽃. 목련이 툭 떨어지듯 리라와디도 하얀 꽃이 통째로 낙화하는 게 눈물처럼 보였을까? 후세 사람들은 꽃 이름을 기쁨을 뜻하는 리라와디로 바꾸었다고 한다.

여행이 딱 하루 남았다. 친구도, 친구의 친구도 지친 것 같다. 친구는 현저히 말이 줄었고, 친구의 친구는 눈 밑이 어두어졌다. 그 사이에서 나도 피로함을 느낀다.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안내하고, 여행하는 일도 이제 딱 하루 남았다.

-나이엑 미스터 퍼스트: 똠얌꿍 센렉
-차이나타운
-인디아타운
-사란롬공원
-카오 산로드: 카오팟싸파롯, 바질캐슈넛닭고기볶음, 인스턴트누들샐러드, 맥주, 땡모반

2023 Thailand Travel 9. Bangkok

하코카빔

여행, 사진, 책,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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