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즐거움이 불안감과 우유부단함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잘 안다.“ - 몽테뉴
여행의 본질이 모호하고 불안정한 것이라면, 이번 타이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일 것이다.
세부적인 목적지도, 동행자의 면면도, 지낼 일정도 모르는 채 비행기에 올랐으니까.
상공 만천육백미터를 날아올랐다.
옆 자리에서는 트로트 영상을 봤다. 그분은 이어폰을 낄 줄 몰랐다. 책을 읽는 동안 활자 사이로, 쿵작이는 소음이 끼어들었다.
음악을 다 들은 그분이 내게 독서등을 꺼달라고 했다. 제 자리 전등이라 답하니, 알고 있는데 그래도 끄라고 했다. 불을 껐다. 그나마 남아있던 활자가 사라졌다.
승무원께 사정을 구하니 독서등을 켤 수 있는 빈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좌석 4개가 비어있었다. 그중 맨 끝에 앉아 책을 펼쳤다. 몇 줄 읽지도 못했는데 누군가 옆자리에 점퍼를 던졌다. 그리고 그대로 좌석 3개에 누워버렸다. 신발을 신은 채 좌석 위로 발을 올렸다. 마스크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활자 사이로 까딱이는 발이 들어왔다. (결국 발로 책을 찼다.)
평소 여행을 함께 했던 A가 옆자리에 없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A는 동행하지 못하는 이번 여행의 이름을 ‘싸바이짜이(สบายใจ)‘라고 지어주었다. 평소와 달리 잘 모르는 친구의 친구의 집으로 놀러 가는 여행을 앞두고 반은 설레고, 반은 걱정하는 내게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이라는 타이어를 건넨 것이다.
타이에 도착하기도 전에 예상하지 못한 고단함들을 만났다. 책을 볼지 말지, 제 자리로 갈지 말지, 불안함과 우유부단함의 연속이다. 하지만 몽테뉴보다는 A의 말을 믿고 싶다. 싸바이짜이!
2023 Thai Travel 1. Bangk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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