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도, 마당도 없는 집에 살지만,
도시농부의 꿈을 품고 텃밭상자를 샀다.
흙과 씨앗, 모종, 그리고 급수가 되는 커다란 화분은 생각보다 무거워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다.
교통비로 상추를 샀으면 일 년은 먹겠다며 투덜거렸다.
그 해 봄에 상추 모종을 심고, 여름에 당근 씨앗을 뿌렸다.
비료와 약을 안 준 탓에 비록 먹을 만하게 자라진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특히, 이웃집 어린이가 매일 관찰한다고 이야기해줘서 뿌듯했다.
서촌으로 이사오며 고민 끝에 텃밭상자를 가져가기로 했다. 여전히 베란다도, 마당도 없는 집이지만.
다행히 동네엔 화분으로 작은 텃밭을 일구시는 선배 이웃들이 많아서 용기를 얻었다. 내 텃밭상자도 그분들 텃밭 옆에 살그머니 두었다.
그리고 긴 장마와 태풍이 지나간 오늘, 드디어 상추 모종과 흙과 비료를 사 왔다.
비닐봉지에 담긴 모종이 망가질까 애지중지 들고 왔다. 흙과 비료는 어찌나 무거운지 양손으로 끌어안으니 오는 내내 닭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때처럼 또다시 투덜거리며 힘들게 가져왔는데……
사라졌다. 내 텃밭상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었던 텃밭상자가 사라졌다.
사라질 거면 모종을 사기 전에 사라지던지, 왜 하필 사고 난 다음에 사라지는 걸까?
야심 차게 청상추와 꽃상추, 로메인과 치커리 모종을 사 왔는데, 어쩌란 말이냐?
오늘따라 남의 화분에 열린 빨강 방울토마토가 부럽기만 하다.
덧붙임, 가져가신 텃밭상자는 급수가 되는 상품으로 급수대도 함께 가져가셔야 합니다.
또한, 작은 비닐하우스용 지지대와 비닐도 포함 상품이니, 돌려주지 않으실 거면 나머지도 같이 가져가세요 ㅠㅠ
I envy my neighbor who raised cherry tomatoes well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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