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학역사 기행 ‘베트남’ 4. 후에+다낭+호이안

하이번 고개를 오른다. 구름을 지나 더 높은 곳으로. 해발 약 700m. 어느새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뿌연 구름 속에 들어와 있다.
산을 오르며 코너마다 크고 작은 사당을 마련해 둔 것을 보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번호판 옆에도 향을 꽂아 두었다. 신에게 안전을 구하는 마음일 것이다. 낮고 작은 인간이 크고 높은 자연을 오른다.

세계 10대 절경으로 디스커버리에 소개된 하이번 고개는 우리나라 38선처럼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가장 치열한 전투들이 벌어졌다. 총과 대포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성문은 공사 중이라 가까이 가지 못했다.

오후에 하미마을에 갔다. 1968년, 총을 든 군인들은 마을의 주민들을 모두 학살했다. 89살의 노인부터 아직 이름조차 갖지 못한 갓난아기까지. 죽은 135명 중 대다수가 여성이었고, 모두 민간인이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족과 이웃의 시체를 모아 무덤을 만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군인들은 또 찾아왔고 불도저를 가져와 무덤을 밀어버렸다. 뼈는 조각나고 살점은 흩어졌다. 이 사건의 군인들은 한국인이었고, 주민들은 베트남인이었다. 위령비 앞에서 베트남인 뚜엔 선생님이 이 이야기를 전해 주셨다. 가해자인 한국인으로 듣고 있자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시를 쓰는 한 선생님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뚜엔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갔다. 생존자였던 고 팜티호아 할머니는 아들과 딸, 두 발을 잃고 평생을 살았지만 돌아가시기 얼마 전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모든 고통은 내가 다 가져가니 한국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도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추모 시낭송을 하고 향과 술과 꽃을 올리고 진혼굿(쑥향의례진혼도깨비굿)을 했다. 살풀이춤으로 마무리하며 냄비뚜껑을 두드려 밝은 신명으로 억울함을 위로하고 영면을 기원했다.

저녁에 참전 군인이자, 소설 <전쟁의 슬픔>을 쓴 바오닌 선생님과의 대담에 참여했다. 당시 작고 연약한 베트남이 강대국에 맞서기 위해 어린 청년들이 희생되었다며, 정의로운 전쟁 같은 건 없다고 단언하셨다. 한국과 북한이 지금 싸우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지금도 쓰러지고 있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떠올랐다.

작고 낮은 인간이 크고 높은 산에 올라 서로를 죽고 죽였다. 한낱 보잘것없는 정치 때문에. 하이번 고개는 이 모든 역사를 내려 보고 있다.

-후에
-하이번 고개
-다낭
-AN House: 카페쓰어다
-Út Tịch Café: 카페쓰어듀아
-하미마을 위령비: 베트남 전쟁 민간인 희생자 진혼굿 “모두에게 평화를!”
-호이안
-Hoi An Mongolian Grill Buffet restaurant
-호이안 야시장
-작가와의 대화: 바오닌 ‘전쟁의 슬픔’

Asian Literature History Travel 'Vietnam' 4. Hue + Danang + Hoian

하코카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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