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사의 멸종

“그는 글로 세상을 상관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한국어에서 가장 공격적인 단어가 바로 ‘상관없어'라고 믿었다. 칼이나 총은 사람을 죽이지만 ’나랑 상관없어'는 관계를 죽이고 환경을 죽이고 세상을 죽인다고 믿었다. 그는 사람과 닭이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사람과 돼지도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고시생과 선원이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사장과 직원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관있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었다. 비록 그가 성공했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말이다.”

-한승태 노동에세이 ‘어떤 동사의 멸종’ 중에서

친구를 만나고, 먹고, 마시고, 물건을 보내고, 받고, 운동했다. 이 가운데 혼자 한 일은 없다. 누군가의 노동 덕에 하루를 보냈다.

밖에서 보는 노동과 안에서 보는 노동은 얼마나 다른가. 기사나 숫자로 읽을 때보다 잠입 취재를 통한 르포여서 그 노동을 훨씬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눈여겨보면, 그곳에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노동이란 진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만, 동사의 멸종, 즉, 사라지는 직업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지은이가 걱정했던 AI와 같은 신기술이 그 직업들을 대체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할 여지가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겠지만 과연 자본이 책에 나온 직업들을 정말 없앨까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콜센터 업무는 AI로 대체되었지만, 인간만이 가지는 ‘공감’이 없어 고객들의 불만으로 다시 되돌아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기술은 노동하는 인간의 고되고 힘든 점을 대신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기보다는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듯하다. 책에 나온 직업들은 대체로 최저임금을 받는 일인데, 저비용로 최대효율을 뽑아내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는 노동강도를 지닌다. 기술은 이 강도를 덜어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인간의 창작 영역이라 여겨졌던 글, 그림, 영상, 음악을 만들거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 쪽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사라지면 좋을 직업들의 비망록이 어떨까? 물론 노동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고된 노동 환경이 더 인간다운 환경으로 대체되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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