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축제는, 긴 줄을 서지 않으면 부스를 볼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많았고, 퍼레이드가 아니었다면 절대 밖에 나가지 않을 만큼 비가 많이 왔다. 쏟아지는 비를 (우산을 써도, 우비를 입어도, 혹은 무방비로) 맞으며 통째로 비워진 대로를 수많은 이들이 걸었다. 빗속에 다 함께 부르던 노래와 춤, 구호 같은 건 잦아들었지만, 사람들은 개별로 더 자유롭게 걷고 춤추고 달렸다. 더불어 매년 퍼레이드를 따라다니며 충돌을 만들어내던 안티들이 흩어졌고, (어쩌면 주인공보다 매해 점점 더 흥을 내 고막과 눈길을 사로잡던) 안티 집단들도 잠잠해졌다. 덕분에 비는 시끄럽게 내렸지만, 그 어느 해보다 많이 생각하며 고요하게 걸었다. 광장을 벗어날 때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종로와 명동을 돌아 다시 시청 광장으로 돌아왔을 때 딱 멈췄다. 마치 약속한 것처럼. 희미하게 해가 나며 노을이 지고 있었다. 무지개가 뜨지는 않았지만, 진짜 무지개보다 더 많은 깃발과 박수와 환호가 하늘을 꽉 채웠다. 무언가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첫회가 떠올랐다. 억지로 끌려간 건 아니지만 자의라고 할 수도 없었다. 누구와 같이 갔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십 명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두줄로 혹은 한 줄로 서서 길 가장자리를 걸었던 것과 그런 우리의 작은 퍼레이드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어르신들의 표정이 기억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더는 성소수자가 무엇인지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긍정하며 미소를 짓거나 부정하며 화를 낸다. (물론 존재 자체가 긍정이나 부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허가된 광장에서 모여 축제를 하지만, 이날이 오기까지 많은 혐오와 차별을 이겨내야 했다. (프라이드 먼스인 6월에 걸 무지개 깃발을 7월이 되어서야 거는 건 슬픈 일이다) 세상은 앞으로 많이 걸어온 것 같지만, 아직 갈 길이 더 많이 남은 것 같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23rd SEOUL QUEER CULTURE FESTIVAL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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