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하던 중에 소월로에서 바라본 우리 동네. 아직은 고층 건물이 별로 없고, 오밀조밀 옛날 집들이 잔뜩 모여 있어 정겹다.
소월로 인근에 매물로 나온 집이 한 채 있었다.
3층 정도 되는 조그만 단독주택이었는데, 해방촌 언덕 빼곡한 집들 사이에 들어 앉아 있어서, 골목과 계단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마침 그날 우리의 산책길과 가까이 있어서 잠깐 들여다 보기로 했다.
모 연예인이 운영하는 유명 레스토랑과 가깝지만, 떠들썩한 기운이 미치지는 못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용기를 내어 그 집의 대문을 밀어보았다. 노인이 잔기침 하듯 열린다.
낡고 하얀 집. 벽도 낡았고, 계단도 낡았고, 난간도 녹이 슬었다. 가톨릭 관련 시설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로 쓰였다는 그 곳은 동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인족을 위한 건축인가 싶게 모든 공간의 폭과 높이가 좁다.
이 집에 관계된 누군가 금새 들어와서 쫓아낼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탐험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하지만 의외의 매력이 있는 공간이었고, 충분히 수리를 거쳐야 할 공간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노을이 문제였다.
마침 하루가 예쁘게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던 거다. 남산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가 흐트러진 호흡을 진정시키고, 하늘은 조용히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잠시나마 이런 노을을 매일 볼 수 있다면 이 불편하고 후진 동네에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꿈틀 올라왔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j는 그 후에도 가끔 그 집 이야기를 한다.
종종 상상한다.
그 집의 옥상에 넓직한 의자를 가져다 놓고 도톰한 담요를 덮고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고단한 서울살이에 말 없는 위로를 받는 건 어땠을까.
그 집을 사지 말아야 할 이유야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할 때, 때로는 단 하나의 이유가 전부가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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